베델의집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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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홋카이도의 작은 어촌 마을 우라카와에 정신장애자들이 모여 사는 베델의집이라는 공동체가 있다. 베델의집사람들 이라는 책은 이곳에 사는 당사자들과 무카이야치 이쿠요시씨가 자신의 정신병에서 얻은 교훈을 조목조목 현장감 있게 정리해놓은 책이다.
1984년 정신 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신의 집이라는 뜻)’을 만들게 된다. 이 책은 그곳에서의 20여 년의 기록이다. 그들에게 소중한 기록일수 있고 경험 하지 못한 정상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이들이 어떤 형태의 정신 구조적 변화로 치료가 되고 있는가, 그리고 이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를 바라보고 싶었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나름 분석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글을 쓴다.
베델의집 사람들은 위로만 올라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 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이론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억압이나 종교적 겸손의 정서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확 다가온다. 삶을 성취적인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로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 고민은 참 좋은 고민인데 버리다니 아깝다, 고생을 빼앗긴 사람들, 고민하는 힘을 되찾자, 올라가는 삶에서 내려가는 삶으로, 병명을 드러내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약함이 갖는 가능성과 저력을 이용한 삶의 선택, 무책임체제 등”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내용이 뒤집힌 듯한 언어들이다. 그리고 무질서한 것 같다. 그러면서 나름 질서가 있다. 실수에 대한 책임을 문책하거나 징계 하지 않는다. 공격성으로 기물파괴를 할 때도 징계나 문책은 없다. 다만 손실에 대한 경제적 책임만 있다. 그것도 무리 없이 일해서 조금씩 갚는 정책이 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은 특별한 정서가 그들에게서 만들어져 있다. 평범하지 않아 가치 있다고 생각 한다. 그렇지만 내 것으로 받아 드리기에는 여전히 낯설고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한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서 정신 본능의 이론을 하나 생각 해 보고자 한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들은 타고날 때부터 두 가지 본능을 타고 난다고 했다. 하나는 삶의 본능 다른 하나는 죽음의 본능이다. 삶의 본능이 앞을 향한다면 죽음 본능은 뒤를 향한다. 여기 베델의 집사람들의 아래로 내려가는 삶이라는 측면에서 이 죽음 본능과 이론을 같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 베델의집 환자들은 대부분 정신증에 해당하는 분열증이거나 경계선장애자들이다, 이 정신증은 과도한 좌절로부터 분열되어 살아남은 사람 즉 정신세계의 한 부분을 위로 행한 삶의 본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좌절된 정신이 분리, 부인, 무시되면서 의식 밑으로 숨어 버린 것이다. 이들은 유아기, 우는 것 말고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아이가 죽음에 이르는 큰 상처를 안고 살아남은 것이다. 이미 아이를 키워본 사람으로서 가슴을 저미게 하는 아픈 연민의 정서가 올라온다. 아픈 이들, 살기위해 태중이나 인간의 원초적 지면 밑으로 퇴행한 정서의 사람들이다. 인간의 정신구조는 감당하기 힘든 지나친 좌절이 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인하거나 분리시켜 기억 속에서 떠나 보내야 살 수 있도록 되어있다. 심한 우울증도 종국에는 죽음을 생각 한다. 즉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죽음 본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은 유아기 좌절에서 부터 위로 올라가는 삶의 경쟁에서 좌절한 사람들이다. 위를 보면 행복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약함 자체에 가치를 두는 정신기재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이 약함 자체로서의 퇴행이 무의식화 되어 숨어 버린 정서를 대화를 통한 의식화과정으로 다시 살려낸 사람들이다. 퇴행 한다는 것은 원초적 부끄러움의 방어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해 보면 이런 감정을 동료 간에 같은 사람들이라는 동질감,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연스런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혼자만의 부끄럽고 고통스러움이 아니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로 함께한다는 집단의 힘에 의존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형태의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정상인의 사고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분열증환자들은 대부분 유아기 언어 이전의 상태의 정서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듯이다. 베델의집 사람들이 일을 안 하고 사고를 쳐도 질책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아이가 말을 잘 못하고 울고 짜고, 오줌 싸고, 똥을 싸도 얼굴 찡그리지 않는 사랑어린 어머니의 시선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그러지 못한 환경을 만나 이미 깨어진 상태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베델의집 사람들에게 이전에 어떤 누구도 그 애틋한 어머니로 살아줄 대상은 없었다. 그러다 베델의집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알아주는 같은 것을 경험한 동료를 만난 것이다. 동료들안에서 지금까지 이해 받지 못했던 정서를 이해받는 대상을 만난 것이다, 그런 대상 앞에 닫혀버린 말문을 열게 되었고 그리고 조금씩 나아가 대상을 알아보고 사고하는 단계로 이어져간 것이다. 그렇다 이들은 그런 대상이 되어 주지 못했을 때 너무나 예민하고 민감하여 순식간에 지금까지 경험한 좌절적인 사건들이 투사되어 방어망이 만들어지고 기분을 맞추거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은 없고 대상의 눈치만 살피는 참자기가 아닌 거짓자기로만 계속에서 살아 갈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만나는 클라이언트가 정신증 환자라면 결국 그들은 다시는 열리지 않는 가슴으로 고착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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